13. 마테마 비치에서 음베야로 |
8. 11(토) 마테마 비치 - 마테마 - 투쿠유 - 음베야 이른 아침의 풍경은 역시 아름답다. 어제 밤도 비가 살짝 온 것 같다. 남은 밥은 고추장에 비벼 놓고 삼각형 튀김 빵을 갈라 고추장을 바르고 바나나와 토마토를 끼웠다. 남편은 이 빵이 의외로 크림 같은 바나나의 부드러움과 고추장 맛의 궁합이 잘 맞아 별미라며 사진도 찍었다. 커다란 파파야는 반을 뚝 잘라 해안이와 실컷 먹었다. 차만 주문하여 밖에 앉아 저쪽 식구들과 같이 먹었다. 하이킹을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일정을 꼽아 보더니 아무래도 에블린네가 오늘 오후에는 떠나야 스티브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단다. 결국 무척 하이킹을 가고 싶어 하던 로이도 아쉬워하며 그냥 포기했다. 오후 2시쯤 차가 있을 거라 해서 우리 식구는 마지막 수영을 하기로 했다. 하루는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떠난다니 나도 아쉽다. 그러나 결정된 사항이니 최선을 다해 마지막으로 잘 놀아야지. 해안은 종려나무 밑에서 놀고 남편과 나만 물에 들어갔다. 아침이라 호수는 수영장처럼 잔잔하다. 아직 해가 높이 뜨지 않아서 차가울 줄 알았는데 물이 차지 않다. 수온이 늘 일정한가 보다. 잔잔하니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맑다. 천상의 장소이다. 좀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동안 파도 때문에 제대로 해보지 못한 수영을 했다. 아침에는 바람이 없어 늘 잔잔한가 보다. 마지막이니 열심히 놀았다. 에블린네는 의자에 앉아 보고만 있다. 드디어 로이도 들어 왔다. 마른 분이 신기하게도 램처럼 뒤로 누워 물에 뜨시는 거다. 손을 살짝 살짝 저어주면 된단다. 어려서는 물을 두려워했는데 어머니가 수영을 좋아하셔서 조금씩 놀다가 저절로 수영을 하게 되셨단다. 에블린과 베키도 수영을 잘 하는데 몸이 별로 안 좋아 안 들어오는 거라고 한다. 베키은 감기에 걸려 있다. 캐나다에도 호수가 많아 평소 수영을 많이 하신단다. 스티브가 차 시간을 알아보러 나갔다. 물에서 놀고 있는데 에블린이 10분 후에 차가 떠난다며 빨리 나와서 짐 챙기라고 소리 지른다. 모두 부리나케 나와서 숙소로 뛰었다. 완전 난리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짐을 챙기고 옷을 입는데 한국사람 아니랄까봐 우리는 매우 신속하다. 챙기면서도 입으로는 서두를 필요 없다고 저 집은 절대 10분 만에 못 챙긴다고 말은 하면서 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옆집은 너무나 느린 거다. 짐을 밖에 빼 놓고 앉아서 기다리자니 느적 거리는 게 다 느껴진다. 결국 1시간이나 지났다. 차가 없었던지 스티브도 안 온다. 나무에 널어놓은 빨래도 다 안 걷고 참 느긋한 집이다. 식비를 받으러 와서 나눠 계산했다(15,000). 방에 누워 한참 쉬자니까 스티브가 툭툭을 아예 숙소로 데려왔다. 운 좋게도 들어오는 툭툭을 발견했단다. 숙비를 계산하고 드디어 출발이다. 오토바이 뒤의 좁은 공간에 모두 탄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짐까지 다 싣고 출발이다. 물론 비좁다. 그나마 앉는 자리라도 있으니 픽업보다 편하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운이 좋은 거다. 정말 별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본다. 크기가 작아도 가격은 픽업과 같다. 여기는 자리의 편안함이나 차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거리대로 돈을 받나 보다. 마을에 내려 바나나를 사고 남은 숯은 냄비 빌려 준 아줌마에게 다 주었다. 무척 좋아하더라나. 사실 오늘 밤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려 했는데 결국 못 먹고 만다. 술병 값도 도려 받았다. 술을 살 때마다 병 값이 있어 불편하다. 차가 달리는데 앉는 자리가 철판이니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 자전거 탈 때 보다 약간 덜하지만 만만치 않은 고통이다. 엉덩이의 수난시대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어 길을 막았다. 작은 툭툭은 옆으로 새서 남의 마당을 지나 돌아간다. 차라면 불가능 했을 거다. 차장도 같이 앉아 8명이 가다가 마을에서 스티브 친구까지 탔다. 운전기사까지 10명이 탄 것. 대단하다. 마테마에서 친구가 소개해준 식당에 들어갔다. 고기, 생선, 닭밥을 5,000에 먹었다. 무지 많이 주고 짭짤한 편이지만 맛있다. 다시 달라달라. 맨 뒷자리에 우리 세 식구가 낑겨 앉아 짐까지 무릎 위에 다 들었다. 차가 출렁이면 모서리에 머리까지 부딪쳐 가며 수난을 당한다. 무척 힘들게 왔다. 곧 헤어질 거라 그러는지 앞자리의 에블린이 유난히 남편에게 말을 많이 시킨다. 당부할 말이 많은 가보다. 이 차는 음베야까지 간다해서 그냥 타고 가려고 했는데 투쿠유에서 다 내리란다. 어떤 차를 타야할지 살피는데 여러 명이 달라붙어 서로 자기 차를 타라고 난리이다. 사설버스라 경쟁이 심하다. 스티브에게 어느 걸 타야하느냐고 묻고, 파악해야 할 스티브도 정신이 나가 우왕좌왕이다. 완전 아수라장이다. 3대의 차장과 주변 사람이 에워싸고 서로 자기 차를 타라고 사람을 끄는데 졸지에 사람 속에 휩싸였다. 팔을 잡아 다니고 짐을 뺏어대는 통에 나는 화가 났다. 만지지 말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곳은 외국 여행 중 처음이다. 사람들이 어찌나 억척스러운지. 해안이가 짐을 뺏기려하고 내가 소리를 질러대자 드디어 착한 스티브도 화가 폭발. 소리를 치며 많은 남자들을 다 떠 밀어 버렸다. 얼결에 해안이도 확 밀어 버린다. 스티브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 그렇게 화난 건 처음 봤다(평소에 물어 보면 살면서 천사 같아서 인지 화를 내본 기억이 거의 없단다). 결국 좀 괜찮은 차에 우리를 앉히고서야 진정된다. 앞차에 우리 차비을 갖다 주고 잔돈을 가져다주었다. 마지막에 극적인 상황이 되어버려서 인사도 대충하고 헤어지게 된 셈이다. 밖에서 우리를 한참 지켜보더니만 결국 그 가족도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동안 십 여일 이상을 여행하며 정도 많이 들었는데 얼결에 헤어지게 되었다. 나름 이제는 우리끼리 여행하고픈 기분도 사실 들었지만 말이다. 저쪽 식구가 워낙에 준비나 행동이 느려서 말이다. 차는 잘 가더니만 곧 망가져서 다 내렸다. 뒤에 차가 오더니 또 대뜸 사람도 그득한데 차장이 해안이 가방을 낚아챈다. 탈 자리도 없는데 말이다. 화가 난다. 바로 뒤 이어 오는 자리가 있는 버스를 탔다. 셋이 앞쪽에 모여 앉았다. 차가 달리다가 길을 건너던 개를 치여 죽여 버렸다. 전번에 마테마 비치 갈 때는 작은 병아리가 길을 뛰다가 치어 죽었는데(그걸 본 스티브는 몹시 괴로워했다) 또 개가 죽다니. 참 기분이 찜찜하다. 어쨌든 중간에 땅콩도 사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잘 왔다. 우리끼리 있으니 뭔가 이제야 진정한 여행 같고 오붓하니 재미있다. 드디어 음베야 터미널. 정류장에 내려서 쉽게 아루샤 가는 표를 끊었다. 개인당 35,000이다. 열 네 시간이 걸린단다. 버스 상태는 별로이다. 터미널 주변에는 빈 방도 별로 없었고 있어도 20,000이나 해서 들어가기가 뭣 하다. 가격은 비싸지만 허름하고 볼품없는 숙소다. 결국 정류장 건너편의 좁은 골목들 사이를 올라간다. 터미널 주변이니 분명 숙소가 있으리라. 새벽에 출발하는 차가 많으니 주변 도시에서 오려면 이 사람들도 한 숨 잘 곳이 필요하니까. 론리 책에도 안 나오는 싼 숙소들을 뒤졌다. 빈 방이 없다! 동네 언니에게 물으니 위쪽에 숙소가 있다는 몸짓을 한다. 더 올라가서 현지인들이 가는 좀 허름한 여인숙 같은 곳을 더블 5,000의 가격에 들어갔다. 방문 밖에 샤워 시설과 화장실이 있어 편리하고 그나마 깔끔한 편이다. 침대 하나를 해안과 내가 같이 쓰기로 하고 짐을 둔 뒤 밖에 수퍼가 있나 찾으러 나갔다. 터미널을 지나 큰 길을 따라 시장이 있다는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데 가게도 없다(나중에 지도에서 보니 시장은 더 먼 곳까지 가야했다). 돌아 내려오면서 결혼식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첫 차는 비디오 팀, 뒤로 신랑 신부 차, 악대 차, 하객 차들 까지. 볼만 한 광경이다. 우리가 손을 흔드니 비디오를 찍고 난리다. 무슨 스타가 된 기분이다. 손을 우아하게 흔들어 주었다. 반응이 좋다. 아래 쪽 레스토랑 바에서 남편이 맥주와 곤야기를 주문했다. 계산이 잘 안 되는 아가씨는 거스름 돈 500원을 주었다고 하고 우리는 안 받았다고 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간에서 레게머리 오빠가 중재를 해 줘도 전혀 씨가 안 먹히는 언니다. 결국 잔돈은 포기하고 나왔다. 숙소 밑 음식점에서 감자 칩과 구운 소고기, 밥을 샀는데 무척이나 실하게 많이 주고 사람들이 좋다. 거의 8시가 다 되어 어두운 길을 따라 숙소로 왔다. 사온 것을 먹어보니 소고기 맛이 매우 좋아서 더 사러 갔다. 이번엔 더 많이 줬단다. 남은 파파야 반 통 까지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화장실 앞이라 유난히 사람이 들락거리는 소리가 크다. 내일은 4시 30분에 일어나서 5시 20분에 출발하는 차를 타야 한다. 현지인 가격의 숙소에 묶은 것도 신기하고 바로 에블린네와 헤어지고 나니 싼 음식을 먹게 된다. 이제 배낭 여행자 모드로 전환되었다. 우리답다. 스티브가 알려준 숙소는 이곳이 아니라 좀 먼 건너편에 있다고 한다. 스티브가 늦은 밤에 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으나 먼저 인사를 하니 모두 부드럽게 대해 준다. 버스 정류장의 소란함도 해가 지고 나니 조용해 졌다. 처음 도착한 장소인데 겁 없이 꽤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 모두들 쉽게 ‘My friend’라는 표현을 쓴다. 오늘은 남편이 두 번 씩이나 꿈에서 봤던 장면이 똑같이 현실 속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한 번은 달라달라를 타고 있던 순간의 내부 장면, 숙소에 들어 고기를 다시 사러 나갈 때 내가 했던 말까지 그대로 다 꿈꾸었던 대로란다. 이번 여행에서는 꿈이 재현 되는 경우가 잦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