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유럽/모로코여행

1. 이탈리아로

2007.12.31(월) - 2008.1.1(화) : 인천 - 로마 - 피렌체

이번 여행은 부랑자 모드에서 벗어나 보자며 남편 신발과 우리 둘의 오리털 파카를 새로 샀다. 12년 만에 다시 가는 유럽은 아무래도 패션을 중시하는 곳이고 면바지도 사실은 좀 무거운 편이라 그냥 청바지를 입기로 했다. 12년 전에도 검은 가죽 잠바에 검은 청바지를 입었는데 말이다. 그때 보다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몸은 훨씬 건강한 상태다.

간밤에는 12시에 자서 2시에 일어나 1시간 반 가량 집안 정리 후 3시 반에 잤다. 아침에도 잠깐 정리하고 학교 갔다. 남편은 학교에 복사도 하러 가고 집안 청소에 뒷마무리, 밥까지 싸느라 너무 바빴단다. 퇴근길이 연말이라 좀 막힌다. 아버지와 엄마, 해안, 경나에게 전화하면서 겨우 5시에 집에 왔다. 공항으로 가는길도 역시 막혀서 출발 1시간 15분 전에 도착했다. 사람이 없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좌석이 다 찼다고 대기하란다. 표를 많이 팔아 먹었나보다. 우리 표는 세금 제외 하고 60만원 대 정도의 싼 표라 마일리지 적립은 안된다고 한다. 혹시 비즈니스석을 줄라나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비즈니스석을 배정 받았다! 정말 전화위복의 상황이다. 아주 운이 좋았다. 담배를 사고 바로 탑승하는 곳으로 갔다.

071231_01.plane
비즈니스 석의 기내식(에피타이저)

비행기 좌석은 우등버스 급이다. 게살 샐러드 부터 시작해서 온갖 종류의 먹거리와 와인들을 준다. 특히 호주산의 화이트 와인은 맛이 깔끔하고 포르투갈 산 포르트 와인은 리큐르처럼 진하고 맛이 달다. 계속 권하고 먹고 하다 보니 얼굴이 붉어진다. 일일이 류선생님, 박선생님으로 호명하며 친절한 서비스를 한다. 미트볼, 새우 요리에 아이스크림까지 많은 음식을 잘 챙겨 주었다. 남편은 지나치게 먹어서 힘들단다. 잠깐 자다 보니 홍콩이다. 면세점은 별 매력이 없고 무선 인터넷이 잘 되어 해안이와 전화하고 아버지께 메일을 보냈다. 와! 정말 신기한 세상이다.

어쩌다 보니 로마가는 비행기도 약간 늦게 타서 우리가 마지막인지 9분 후 출발했다. 기장이 5, 4, 3, 2, 1을 세더니 "happy new year!" 한다. 모두 박수를 쳤다. 이 순간이 새해라니... 이럴 때 와인이라도 한잔 씩 돌려야 하는 것 아닌가? 바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잔다. 나는 아주 잘 잔 편이고 남편은 다른 때 보다는 좀 더 잔 듯하다. 새벽에 눈이 초롱해져서 씻고 라면과 샌드위치 간식을 잘 챙겨서 주문해 먹었다. 다시 자다가 아침식사를 하고 6시가 약간 넘어서 내렸다. 짐을 재빨리 찾고 이태리 남자애에게 물어 전철역에 먼저 도착했다.

080101_01.LostCard
전철역에서 기다리다가

그러나 전철역에 일찍온 게 죄가 되었다. 표 끊는 기계에 남편이 신용카드를 넣었는데 먹어 버린 것이다. 꼼짝없이 담당직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여러 직원들에게 호소를 해 보았지만 대답은 하나 뿐이었다. 과연 직원이 8시 제시간에 출근할 지도 걱정스러웠다. 기계 앞에서 기다리며 표를 끊으려는 사람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안내까지 하게 된다. 졸지에 역 도우미가 되었다.

오래 서있으니 제법 쌀쌀해서 춥다. 남편과 김밥도 먹고 서서 화장도 한다. 남편은 사무실 근처에서 담당 직원을 기다리고 나는 짐을 지키고 서 있었다. 8시 5분에 직원이 출근해서 카드를 겨우 빼냈다. 1시간 이상 늦어졌지만 덕분에 주변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구경도 여유있게 하고 동이 터오는 로마도 보았다. 작은 사건 때문에 여행을 시작하는 마음이 더 편해지고 여러가지를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레오나르도 직행열차로 떼르미니역에 왔다. 로마의 새해는 모두 늦잠을 자는지 주택가가 조용한 편이다. 예약없이 떠나는 열차가 있어 남편에게 타자고 하니 먼저 개시 도장을 받아야 한단다. 줄서서 기다려 30유로내고 예약하여 10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탔다.

080101_03.ToRoma080101_04.ToFirenze

자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바꿔서 1인석 앞뒤로 앉았다. 남편은 전기를 쓸 수 있어 컴퓨터를 하고 나는 그 뒷자리에서 글을 썼다. 차장이 와서 표검사를 한다. 옆의 언니네는 뭐가 문제인지 15유로 씩 벌금을 내야 하는데 이번 만 봐준다고 한다. 주변이 다 유레일 패스 소지자 들이다. 기내에서 챙긴 빵과 샌드위치, 과자를 먹었다. 바깥 풍경은 넓은 벌판에 약간의 풀, 나무들이다. 역시 올리브 나무가 많다. 이곳이 과연 로마인가 싶은 것이 도무지 실감이 안난다. 맑은 날씨에 좀 쌀쌀한 편이다. 좌석이 편해서 잠이 오려고 할때 음료 서비스가 와서 커피와 스낵, 물을 먹었다. 곧 이어서 사탕 서비스도 온다. 어릴 적 초등학교 때 비행기를 처음 타서 집던 사탕이 생각난다.

정확히 한시간 반 후 피렌체에 도착했다. 반나절 만에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빠르다. 전화카드를 사서 자매민박에 몇번 했는데 잘 안된다. 핸드폰을 거니까 주인이 베니스에 있단다. 그래도 우연히 자매민박에서 막 나온 애들을 만나 그냥 찾아가 보기로 했다. 좀 헤매다 결국 다시 전화를 해서 할머니를 만났다. 예약 손님이 너무 많다며 2호점으로 데리고 갔는데 13인실이다. 이것도 없을 뻔 했단다. 남편이 보낸 메일에는 역에 와서 전화를 하라 했었다. 그런데 주인이 하루 전에 전화를 줘야하는 거라고 한다.

다시 역으로 가서 니스 가는 밤차를 끊었다. 니스에서 마르세이유는 니스에서 끊으란다. 겨우 10유로가 예약비이다. 기차로 피사에 간다. 오늘 피렌체 올 때 유레일패스 개시를 했으므로 표없이 타도 된다. 편하게 앉아 아기자기한 마을들을 구경했다. 앉아서 쉬는 셈이다.

080101_05.ToPisa 080101_07.PisaStreet
사 가는 열차
080101_08.PisaBridge
080101_09.AtPisa
080101_10.AtPisaTower1080101_11.AtPisaTower2
피사의 사탑 기울기 확인
080101_16.AtPisaDuomo2080101_17.AtPisaDuomo3
피사의 두오모

1시 10분 정도 가서 피사에 도착하여 30분 가량 도시를 가로질러 걸었다. 새해라 가게는 문을 닫았고 스낵 가게도 먹을 만한 것이 없다. 빵도 별로 맛이 없어 보인다. 가게에서 탄산수 물만 샀다. 피사의 사탑은 참 신기하다. 사진으로 볼 때 보다 더 이상하고 재미있는 건물이다. 무거운 돌들을 켜켜이 쌓았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이 영 불가사의 하다. 꽤 많이 기울어져 있다. 만들 때부터 기울었다는데 무대포로 계속 쌓았단다. 종루라고 한다. 무척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이 건물에 올라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위험해 보여서 별로 가고 싶지도 않다. 두오모 성당 안은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보통 패키지 관광객들은 달랑 피사의 탑과 이곳을 들른다. 여기만 벗어나면 도시가 절간 같이 고요하다.

과자 하나 사고 5시 기차로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도시 구경. 연 가게가 거의 없다. 동네의 작은 수퍼에서 포도주, 과자, 사과를 사고 숙소. 약간 피곤하다. 7시에 저녁을 먹는다. 반찬도 푸짐하고 어찌나 걸판지게 차리셨는지 너무 맛있게 먹었다. 삼겹살에 상치, 시금치, 잡채 등이 다 너무 맛있다. 중국 분인데도 음식 솜씨가 정말 좋으셔서 우리나라에서 보다 더 토속적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잠시 밖에 나가 볼까 했는데 그냥 쉬기로 하고 아를르 호텔 검색도 해보다가 그냥 가서 찾기로 했다. 이모가 내일 저녁은 닭도리탕을 하신단다. 내일 저녁 값으로 10유로 내고 숙소에서 쉬다가 11시 25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인심이 좋으셔서 맥주와 귤도 서비스로 주시니 우리가 사온 걸 못 먹고 있다. 살짝 어지러운 것이 비행기 타고 기차로 이동한 결과가 나타나는가 보다. 지금이 저녁 9시 반이다. 우리나라는 아침 6시 반. 밤을 꼬박 지낸 셈이다. 어지러울 만도 하다. 자야겠다. 일기쓰고 돌아오니 남편은 벌써 잠 잔다.

2008.1.2 (수) : 피렌체 - 니스가는 기차

아침 5시에 남편이 일어나서 나도 깼다. 모두 자고 있다. 화장실에 갔다온 후 식탁에 앉아 메일도 보내고 아를르의 숙소를 검색했다. 결국 가서 찾기로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7시에 아침을 먹는다. 소고기국에 불고기 등 푸짐하게 한상 받아서 잘 먹었다. 저녁 식사비는 미리 주고 짐을 챙겨둔 후 길을 나섰다. 재래시장에서 맛있는 빵도 사고 먼저 아카데미아 박물관에 갔다.

080102_01.FirenzeAcademia
아 카데미아 박물관

입장 시간에 맞춰 왔는데도 벌써 줄을 섰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미켈란젤로의 노예의 방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모습을 처절하게 표현한 듯하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다비드 상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비드의 얼굴과 이미지가 바뀌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왼쪽은 강인한 얼굴에서 오른쪽으로는 골리앗과의 싸움을 걱정하는 얼굴로 바뀐다. 근육과 몸의 표현, 특히 오른손의 섬세한 핏줄까지 살아있는 인간같다. 멀리서 보면 얼굴도 크고 오른팔도 무척 길어 이상해 보이지만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괜찮아 보인다.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많이 만들어졌던 석고상들은 표정이 참 다양하고 감정이 드러나는 얼굴이다. 1시간 반 이상 머물면서 앉아 쉬기도 하고 잘 있다가 나왔다.

080102_02.FirenzeDuomo080102_03.FirenzeDuomo1
두오모 성당

두오모 성당은 화려하고 크지만 어제 피사의 성당보다 아기자기하지 않다. 시장에서 산 빵을 먹으니 참 맛이 있다. 우피치 미술관에 가니 줄이 어찌나 길던지 강변까지 ㄱ자로 길게 늘어서 있다. 포기하고 보석상이 늘어 선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궁전에 갔다. 겉모습이 장중하나 좀 단순한 편이고 입장료까지 비싸서 별로 들어갈 생각이 안난다. 산타 마리아 성당에 들렀다. 별로 볼 것이 없어 강변을 따라 한참을 걸어 다시 반대 쪽의 산타 크로체로 간다. 가다가 'forno'라는 빵집에서 사과 얹힌 빵과 쿠키를 샀다. 모두 맛이 좋다. 책에 나와 있는 성당 앞의 마리오 카페를 찾았다. 카푸치노와 토마토 피자를 시켜 지하의 방으로 내려 가니 제법 아늑하다. 잠시 먹고 쉬었다. 남편은 무척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 여행 초반에 항상 안 좋다.

080102_07.FirenzeBridge080102_10.FirenzePittyPalace2
베키오 다리와 피티 궁전 앞에서
080102_13.FirenzePolicecar080102_14.FirenzeSmallBus
작은 경찰차와 작은 시내버스
080102_16.St.Croce080102_17.St.Croce.Dante080102_18.Uffizi-1
산타크로체 성당 앞에서 / 우피치 미술관의 기다리는 줄

우피치 미술관은 줄 서는 것 때문에 영 엄두가 안나기는 한다. 그러나 산타크로체, 피티궁전 등도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데 역시 이곳에 온 목적에 걸맞게 미술관 줄을 서기로 했다. 추운 데도 여유있게 기다리는 이 사람들의 인내심도 대단하다. 우리도 목적의식을 가지고 1시간 반을 기다렸다. 길가의 그림 그리는 사람도 보고 잡다하게 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박물관에 들어갔다. 어찌나 기쁘던지... 모두들 인간 승리이다. 3시 20분에 들어가서 맨 위층으로 올라간다. 미켈란젤로는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로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되는 새롭고 앞서가는 그림을 그렸다.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의 그림을 본다. 역시 '봄'과 '비너스의 탄생'이 멋지다. 그림이 상당히 컸는데도 대단히 정교했다. 작은 꽃들까지 세밀화 이상으로 묘사 했다. 피렌체 회화도 많다. 앉아서 쉬며 찬찬히 그림을 보고 밖으로 나와 시장에 갔다. 아침의 시장 건물은 문을 닫아 다시 'forno'에 가서 빵을 사고 큰 수퍼를 찾아 내어 필요한 빵과 치즈 등을 샀다. 내일 아침 먹을 것 들이다. 숙소로 돌아온 시각이 7시가 넘었다. 저녁은 닭도리탕이다. 다른 반찬까지 맛있게 먹고 나니 졸립다. 누워서 한숨 자야겠다. 떠나는 날인데도 이렇게 침대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이 숙소가 참 고맙다.

2시간을 잤는데 그동안 남편은 아를르의 호텔을 예약했단다. 방에 있던 학생들이 밤에 밀라노에 갈건데 출발역이 이곳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다. 우리 표도 꺼내 살펴보니 역시 다음역이다. 피렌체에는 역이 2개 인데 별 생각없이 종착역인 이곳이라고 여유있게 있었던 것이다. 짐을 챙겨 역으로 갔다. 피사가는 열차가 막 떠나서 버스를 타기로 하고 기다리는데 영 오지 않는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짧은 거리인데도 미터기 끊어 13에 무슨 할증인지 뭔지 3을 더 받는다. 총 16이나 받으니 어이가 없다. 이 거리가 2만원? 말도 안된다. 게다가 열차는 연착이다. 12시가 넘어 기차를 탔다. 이번에는 우리 칸에 엄청 냄새가 나는 놈들이 누워 자고 있는 거다. 악취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 게다가 이 놈들 빨리 일어나지도 않고 꾸물댄다. 좌석없는 애들이었다. 이탈리아 여자 두명, 우리나라 학생들 둘과 여섯이 이곳에 들었다. 냄새를 빼느라 방창과 복도창을 다 열었는데도 한참동안 참기 힘들었다. 물건을 도둑 맞을까 걱정을 한 것은 기우. 한칸으로 되어 있어 안전한 편이다. 우리가 안쪽 창가에 마주보고 앉았다. 서로 다리를 뻗어 올리니 좌석도 앉을 만 하다. 불편한대로 잠을 청한다. 45분 연착했는데 언제 도착할까 싶다. 게다가 자다 깨어 보니 밀라노 역에서 1시간 반을 정차한다. 뭐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이탈리아 경찰이 한번 문 열어 보고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한다. 한국이라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그냥 간다. 그 이후 무슨 검사 같은 것은 없었다. 기차가 바다를 끼고 달린다. 남편은 잠을 잘 못 잤다고 한다.

 

상위메뉴로 다음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