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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월) 부다페스트(헝가리)

게바라 : 아침 6시 10분 전에 아저씨가 곧 내린다고 깨웠다. 얼마나 깊이 잤는지 문 두드리는 소리도 남편이 듣고 일어났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6시에 내린다. 역부터 규모가 궁전 같다. 높이와 넓이, 기둥 하나도 엄청나다. 이런 곳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 블록의 크기가 지금까지와 달라 걷기가 쉽지 않다.

남편이 알아 둔 '카르페 녹템 비테'를 찾아 50분 정도 걸었다. 부다페스트는 건물 규모가 지금까지의 것의 2배는 뻥튀기된 것처럼 느껴진다.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어렵게 찾아 왔는데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누군가 들어가기에 따라 들어갔다. 4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역시 10여 분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다른 숙소를 찾으려 해도 준비해 온 것이 없다. 포기하고 내려가려다 남편이 다시 한 번 눌렀는데 다행히 미카엘이 나왔다. 어제 늦게까지 놀고 늦잠을 자는 가 보다. 죠니가 지도에 갈 곳을 표시해 주었다. 이곳은 파티를 하고 노는 것으로 유명한 숙소란다. 40대 이상은 곤란하다고 선전을 한 곳이라는데 우리는 전혀 모르고 왔다. 나중에 살펴보니 그랬다. 그래피티나 쓰인 내용들이 재밌다. 전부 20대나 30대 초반 정도의 애들이다. 커피 대접 받고 아침을 펼쳐서 먹었다. 짐은 방 배정 받으면 넣어야 해서 두고 9시에 나섰다.

100달러를 환전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시나고그에 갔다. 10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이르다. 국립 박물관도 월요일이라 휴관. 짜바작 다리를 향해 걷다가 아름답고 큰 건물을 보았다. '그랜드 마켓 홀'이라는 곳이다. 들어서자마자 놀라웠다. 채소, 과일, 고기 등 물건들이 많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물 안의 작은 점포마다 예쁘고 질서정연하게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양한 식재료들로 가득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곳이었다. 겉과 속에 붉은 빛이 도는 오렌지와 근으로 재어 파는 과자를 샀다. 의자에 앉아 먹고 2층에 간다. 다양한 기념품, 민속 공예품과 먹거리를 판다. 수를 놓은 수공품들이 많다. 닭과 베이컨으로 겉을 싼 굴라쉬와 치킨 필라프를 만원 정도에 먹었다. 이곳은 가지, 감자 등에 속을 채워 넣은 굴라쉬가 유명하다. 가격은 비싼 편이다.

짜바짝 다리도 참 예술적이고 아름답다. 두나강은 베오그라드보다 강폭이 넓어져 한강 크기가 되었다. 빗속에 우산을 쓰고 바람 부는 강을 건너 시타델에 갔다. 동굴을 파서 만든 성당이다. 1인 500(2500원)을 내면 영어로 설명해 주는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준다. 역사적 의미부터 영어 설명이 너무 길다. 그냥 작은 동굴 성당이다. 헝가리 전통 방식으로 조각한 나무로 꾸민 성당도 예쁘다. 간밤에 잠을 잘 못잔 남편은 여기서 잠시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나와서 강변을 따라 걸어 캐슬에 갔다. 작은 우산을 둘이 쓰면서 가려니까 팔이 아프다. 궁은 높은 곳도 아닌데 푸니쿨라가 5,000원이나 해서 우린 걸어 올라간다. 역사박물관, 도서관 갤러리로 쓰이는 곳이다. 월요일이라서 역시 휴관. 어쨌든 규모도 크고 멋지다. 날이 뿌옇게 흐리기는 하지만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다. '글루미 선데이'의 나라답게 우울하게 꿀꿀한 날씨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데도 우산 쓴 사람은 드물다. 성채 위에서 구경하고 내려와 체인브리지를 건넌다. 1800년대에 이렇게 견고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다니 놀랍다. 이 사람들은 최초로 영국이 지하철을 만든 30년 후 대륙 최초로 운행한 나라이다.

마자르는 'Magyar'는 말갈에서 온 듯하다. 우랄 동쪽의 유목민족이 서쪽으로 와서 세운 나라.

헝가리(훈가리)는 나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훈족의 나라'이다. 야만족이라고 유럽 사람들이 기피했던 민족, 하지만 가톨릭을 받아들여 교황의 사랑을 받고 발칸에 가톨릭 전파의 토대를 만든 나라다. 유목민족이 이곳에 정착하여 이토록 거대한 건물들을 만들고 놀랍게 잘 적응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헝가리는 유럽에서 동양풍을 느낄 수 있는 곳, 동양 쪽에서 유럽으로 갈 때는 유럽풍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시내의 중심가 도로는 너무 넓고 매장의 높이도 높아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길에서 볼 때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다. 걸어서 숙소 부근에서 장을 보고 들어왔다. 언니들은 또띠야 해먹을 준비를 한다. 우리는 생선을 기름에 지져 안남미와 함께 먹었다. 닭구이도 샀다. 역시 짜다. 반찬으로 먹어야 했다. 언니들이 대량 요리를 해야 하므로 얼른 먹고 비켜 주었다. 10유로 하는 14인실 숙소는 젊은이들이 쓰는 곳답게 각자의 짐들이 널브러져 있다. 파티를 해도 음악 듣고 얘기도 해가면서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논다. 그렇지만 방도 산만하고 정신없어 쉴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기차역에 표를 사러 나간다. 열심히 걸어서 간다. 표는 두 사람이 35유로. 그런데 신기하게 왕복이 더 싸다면서 왕복표를 끊어 준다. 그것도 오픈티켓으로 내일 아무 시간에나 원할 때 타면 된다. 이런 경우가 있다니. 돌아오는 표를 남 줘도 되냐고 남편이 물었다. 괜찮다고 한다. 기차는 버스비보다 싸고 더 빨리 간다. 남편이 시티 파크에 가보자고 해서 걸어갔다가 피곤하여 그냥 돌아온다. 비도 조금씩 오고 잘 보이지 않았다. 뿌옇게 흐려 시계가 좋지 않다. 숙소에는 아이들이 다리가 부러질 듯 쑤시고 후덜거린다. 어제 오늘 너무 걸었다. 남편 얼굴도 완전히 힘들어 보인다. 모두 나가서 얘기하고 음악 듣느라 방이 조용하다. 얼른 자야겠다.

1.22(화) 부다페스트(헝가리) -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

부다페스트 시티 파크

게바라 :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모두 자서 조용하다. 남편을 깨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짐을 다 싸서 숙소 계단 아래 두고 걸어서 시티 파크에 간다. 길은 조용하고 걷기에 좋다. 어제보다 날씨가 더 쌀쌀해졌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건축물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볼 만하다. 공원의 입구는 거대한 동상들이 많다. 마자르족의 조상이 유목민족임을 알 수 있는 머리를 땋은 인물상은 도끼나 이상한 망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양 편에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전시 공간으로 쓰인다.

이 도시의 많은 옛 건물들에 '대여'라고 붙어 있다. 오래된 건물을 유지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방치된 것들이 많다. 유리창이 깨어져 있거나 지붕이 훼손되어 있다.

공원 입구의 거대한 스케이트장에서 사람들이 놀고 있다. 코소보의 미니 스케이트장과 규모의 차이가 크다. 공원 연못은 온천수 물이 식는지 김이 오르고 있다. 오리와 갈매기 종류들이 논다. 물은 미지근하다. 오른 편의 작은 궁전 같은 건물은 대단히 예쁘다. 놀이공원의 궁전 같다. 이 궁전이 지금은 박물관이다. '

마자르 농업박물관(1인 5,000원)'에 들어갔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볼 것도 많고 좋았다. 물레방아의 원리를 모형으로 만들어 알 수 있게 해주는 공간, 산림관, 동식물관, 사슴류의 박제만 모아놓은 뿔관은 종류가 많다. 아름답고 장중하다. 이들의 사슴뿔 사랑은 동북아시아의 신단수를 연상케 한다. 뿔은 나뭇가지를 의미하고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동상들을 보면 모자에 깃털장식을 하고 있다. 새 깃털은 고구려 사람들도 썼던 것, 새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상징이다.

사냥총 전시실의 총은 예술품에 가깝다. 정교한 장식과 자개를 박아 놓은 총은 참 아름다웠다. 건물의 장식 문양, 창, 진열 해놓은 모습 등 모든 것들이 세심하고 멋지다. 예를 들어 뿔관의 천장은 뿔모양을 형상화하여 칠했다. 농경문화와 관련된 도구들, 옷, 마구 전시실. 우리나라의 맥궁 형태나 말 위에 앉아 뒤로 돌려 활 쏘는 모습은 고구려와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말 관련 전시실. 이들의 말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의 원래 말도 조랑말이다. 'Magyar cold blood'라고 부른다. 헝가리인의 거대함, 섬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박물관이다. 이들의 국립 박물관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시간 상 다 볼 수는 없다.

지하철로 시나고그 근처에 간다. 역사가 오랜 지하철의 내부는 온통 나무로 되어 있다. 나무장, 의자, 철기둥 모든 것이 고풍스럽다. 지하철도 관광의 요소가 되는 곳이다. 중국 패스트 푸드점에서 닭볶음과 면(5,000)을 먹었다. 볶음밥(1,500)을 추가했다. 시나고그는 입장료가 13,000원. 사진은 1,500원을 더 낸다. 기도하는 장소를 그 돈을 내고 볼 마음은 없다.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여기서 많이 죽기도 했단다. 중국집에서 닭탕수육을 포장하고 숙소로 왔다. 일기를 쓰며 커피 한잔 마시고 있다.

2시에 나와 걸어서 2시 40분에 역에 왔다. 재 환전하여 9유로를 받고 나머지는 작은 초코바를 샀다. 공항처럼 전광판에 게이트가 뜨면 나가서 탄다. 2등 열차도 콤파트먼트가 있어서 먼저 가서 자리 잡았다. 공간이 넓다 싶었는데 옆 칸과 다르다. 장애인실 표시를 못보고 들어왔다. 이미 다른 칸에도 사람이 들어가 있어서 그냥 있기로 했다. 세 자리씩 차지하고 발을 뻗고 간다. 3시 25분에 떠난 열차는 안내 방송도 없이 출발한다. 역이 방송 소리 없이 조용히 움직이는 셈이다. 중간에 설 때도 안내가 전혀 없다. 알아서 내려야 한다. 중국 식당에서 싸온 닭 탕수육을 맛있게 먹었다. 남편 생일 턱으로 먹는 셈이다. 밖은 눈보라가 몰아친다. 부다페스트를 벗어나면 평범한 풍경이 펼쳐진다. 슬로바키아로 들어와도 여권 검사는 없고 방송도 없다. 남편이 열심히 검색하고 이웃 칸의 사람에게 묻고 다녀 6시 30분에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다.

브라티슬라바

역을 나서서 베오그라드에서 받아 온 호스텔 전단을 들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영어를 잘 하는 편이다. 트램타는 곳을 찾아 갔는데 트램이 없어졌다고 한다. 한 아주머니가 전단의 거리를 보고 걸어가도 괜찮은 거리라고 한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갈 수 있는 길을 좁게 내어 놓았다. 관청이 있는 곳을 따라 내려간다. 거리가 휑하다. 우회전하여 길도 좁아지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만난다. 어렵사리 찾아간 곳은 대로의 빌딩에 크게 입간판이 세워진 호스텔이었다. 남편 생일이라고 약간의 할인을 받아 2일 55유로 정도에 들어 왔다. 주점 같은 분위기가 있는 좀 특이한 곳이다. 6인실을 우리 만 쓰고 있다. 내부는 평범하고 밖에 실별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아나키 : 부다페스트 keleti역을 3시 25분에 출발하여 6시 15분쯤 브라티슬라바 중앙역(Hlavna Stanica)에 도착했다. 2등석을 끊고 탔는데 6인용 컴파트먼트와 일반 좌석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사람이 적어서 6인실을 두명이서 타고 왔다. 열차 안에 방송이전혀 나오지 않아 어디를 가고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역에서 올라타는 분들께 물어 어디쯤 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브라티슬라바 내릴 때도 물어보고 확인한 후 내렸다.

역에서 트램 13번이 있다고 들었는데 공사 중으로 임시 정지한단다. 베오그라드에서 추천받은 블루스 호스텔 약도만 가지고 물어 물어 찾아갔다.

"익스큐즈미 두유노 디스 스피릿탈스카 스트릿?"

숙소 있는 거리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대신 숙소거리 한 블럭 위의 오브초드나 거리는 다행히도 모든 사람들이 안다. 걸어서 30여분. 처음 오는 도시에서 물어 물어서만 숙소까지 올 수 있다니. 그만큼 브라티슬라바는 작다.

블루스호스텔은 바와 식당,주방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곳이다. 도미토리지만 깨끗이 정리된 침실도 좋았고 욕실이 도미토리 하나마다 배당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뭣보다 오늘 6인실엔 우리밖에 없다!

게바라 : 밤의 브라티슬라바를 구경하러 나간다. 구시가는 놀이동산만큼이나 앙증맞다. 거대한 부다페스트에서 와서 비교가 된다. 생일이라 뭘 좀 먹을까 해도 특별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음식점이나 술집에 많이 앉아 있다. 그냥 숙소에서 만들어 먹기로 한다. 그런데 수퍼들이 대부분 9시에 문을 닫는다. 다행히 10시에 문 닫는 빌라를 발견하여 장보고 들어왔다. 소시지와 닭을 볶아 늦은 저녁을 먹고 씻었다. 포도주를 샀는데 싸고 맛이 좋다. 생일 노래도 못 불러 주었는데 서로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하고 안아 주었다.

아나키 : 브라티슬라바 올드시티는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민속촌의 느낌이다. 시내중심광장 주변에 늘어선 높은 건물들도 위압적이지 않고 도시 곳곳에 놓여진 동상들도 익살스럽다. 포근한 산책을 마치고 식당에서 지난번 먹던 닭고기와 소시지를 마늘과 양파에 볶아 반찬을 만들어 방 안에서 맛나게 먹었다. 베오그라드 슈퍼에서 큰 맘먹고 산 빨간 양념 느낌의 고기 묵은 알고보니 머리고기 편육 슬라이스 햄. 맛있게 밥을 싸 먹었다.